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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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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 2021-09-01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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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뉴스에서나 보던 귀경길,귀성길을 처음접한! 결혼직후
    다시는 명절에 이 길위에 있지말자..해놓고
    머리싸매고 대화한후에 새벽에 떠나고있답니다
    새벽2시..3시.. 길이 빵!뚫려있어요. (피곤한 명절--)
  • 댕**** 2021-09-01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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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부모님 손잡과 고속버스로 시골에 항상 갔었더랬지..
    북적북적한 터미널에서 멀미약 먹고 까만비닐봉지 준비해서.. 버스에서 재롱을 피우면 주위에 어른들은 깔깔거리시며 기분좋게 인사나누던 시절.. 벌써 30년 전 일이구나..
    4시간 넘게 버스타고 도착하여 시골에 도착하면 반갑게 버선발로 달려와주신 할머니.. 그립습니다~~!!
  • w**** 2021-09-02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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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명절 귀향길 하면 잊혀지지 않는 기억속에 한장면이 있지요
    표가 없어서 시외버스 타는데 창문 넘어로 태우고 자리맏아서 콩나물 시루 처럼 꽉 찬 버스로 이동하던 고향가던길
    그래도 마냥 신났던 그때의 명절 넘 그립습니다~~^^
  • 황**** 2021-09-02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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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코로나로 인해 온 가족이 모여본적이 없네요~~ 명절 차례상도 간소화 되었고, 조카들도 보고 싶고
    평상시도 모이기 힘든 시기인지라 그러려니 하지만 가족들 모두 모여 하하호호 시끌벅적한 때가 그립습니다.
    이번 추석도 내려오기 힘들다는 동서네 전화받고 서로 보고싶단 인사만 했네요~ 어쩌다 조카들 용돈도 카카오로 보내고 인사도 카톡으로 받는
    세상이 되어 버렸는지..... 더 나은 세상만들기에 더 적극 동참코자 재활용 철두철미 분리하고 비닐은 최대한 안쓰고 있습니다.
    남도장터에 바라는게 있다면 일회용품을 최대한 적게해서 포장해서 납품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쩔수 없이 외로운 추석명절 장남며늘은 혼자서 코 훌쩍이며 준비할것 같네요~
  • 채**** 2021-09-02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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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추석표를 끊어 고향길 편히 가려고 코레일 기차예매 어플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지금과는 다르게 예전에는 새벽3시부터 역에 사람들이 매표소앞에 진을 치고 자다 표를 끊고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근데 여전히 기차표 어플도 표예매하기 힘드네요. 모두들 추석연휴 즐거운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 김**** 2021-09-03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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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추석이 되면 우리집이 큰집이라서 제수음식 만들기, 청소, 시장 보기 정말 힘드네여, 그다음말도 손님 접대,,, 등 하지만 오랜만에 시구들하고 모이는 것도 좋았어요.. 이제 코로나로 모이기는 힘들지만 모두 행복한 추석이 되었으면 합니다
  • 이**** 2021-09-03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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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옛날엔 추석, 명절이 되야만 옷 한벌 새로 부모님께 얻어 입곤 했는데~~ 참 세상이 이렇게 변할줄이야
  • 이**** 2021-09-03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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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추석이 되면 할머니 할아버지를 뵈러 멀리 시골로 내려가곤 했네요 가는 길에 먹을 음료수도 사고, 오징어도 사고 다양한 간식거리들 사서 ,
    가족들과 함께 차안에서 도란도란 시간을 보내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졸지 않으시려고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시는 아부지와,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수석에서도 아랑곳 하지 않고 주무시던 우리 어무니...
    그리고 옆에서 화장실 가고싶다고 휴게소 언제오냐고 징징거리던 언니까지 ㅋㅋㅋ 이제는 다 추억이네요 ~~
    댓글 이벤트를 통해 그 때를 생각하니 미소가 지어집니다! 아직 어린가봐요 명절생각하니 들뜨고 설레네요 ㅎㅎ
  • 윤**** 2021-09-03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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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얼마전 명절 기차표 예매한다는 동료의 말에 라떼는 말이야~ 하며 이야기했는데 다들 생소해 하네요. 예전엔 밤새워가며 줄을 서서 기차표를 예매했던 때가 있었죠. 예매 전날 밤부터 역 앞에서 언니랑 이불덮어가며 기다렸다 표 끊어 고향엘 갔네요. 이제는 고향에 반겨줄 부모님도 안계시지만, 그때 그 시절이 그립기만 합니다. 코로나로 힘든 시절이지만 모두들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 이**** 2021-09-04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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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저 어릴적에 추석이 가까워 지면~ 엄마가 지래시장을 2주전부터 오가시며 미리 조금 이라도 더 쌀때 재료들을 장만하시러 다니시던게 생각나네요~
    버스도 안타시고 편도 1시간도 넘는 거리를 그렇케 걸어서 준비하시던 엄마~
    비록 올해도 코로나여서 다같이 모이는건 못하겠지만.
    70이 넘은 지금도 엄마는 조금씩 조금씩 사나르고 계실것 같네요~~효도 해야겠어요
  • 김**** 2021-09-04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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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2000년대 초반 대학생일때 저는 부푼꿈을 꾸고 공시 공부를 했습니다.같은 꿈을 꾸는 친언니와 광주 전남대근처 학원을 다닐때였죠. 시험이 얼마남지 않아 다들 시험공부에 매진했고 학원도 추석전날 저녁까지 운영했죠. 학원갔다온 후 언니랑 부랴부랴 광주 광천동 터미널 갔습니다. 이미 귀향객들은 가득 저희 고향표도 매진. 고향이 진도라 평소에는 바로 현장에서 끊어도 됐는데명절이라 막차까지 매진이었습니다. 그리고 차도 몇대 없고 막차도 일찍 끊깁니다.언니랑 저랑 발을 동동 거리고 계속 사정하니 중간경유지(목포 또는 해남)에 사람들이 많이 하차를 한다며 거기까지 입석을 해야한다해서 언니랑 저는 입석으로 중간경유지까지 가 사람들이 내린 후 좌석에 앉아 고향에 갈 수 있었습니다. 공부하랴 학원다느랴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부모님 보니 좋았습니다. 몇년뒤 우리는 학원다닌 보람의 결과를 얻었고 지금은 둘다 차가 있어 1년에 한번이나 버스탈까요? 밤이든 새벽이든 고향으로 달려갈 준비가 됐는데 현실과 열심히 싸우느라... 그때의 열정적인 모습이 그립습니다.
  • 장**** 2021-09-06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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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아직도 잊지 못한 귀향길 추억중 하나는 시골 내려가느라 비몽사몽 짐 챙겨서 차 타고 내려가는길..옆 차가 자꾸 손짓으로 위를 가르쳐 주더라구요
    먼가 싶어서 갓길에 차를 세우고 보니...제 핸드폰이 차 지붕에 떡 있어서리 깜놀한 기억이 나네요..핸드폰 고무커버 아니였음 거리 어디쯤에서 있었을듯요..
  • 김**** 2021-09-06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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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외할머니 시골이 영암이라 서울에서 명절에 내려 가려면 거의 반나절 이상을 고속도로에 있어야 했고, 영암에 도착해서도 택시 타고 또 한참을 들어가야 했어요.
    하루에 오가는 버스도 정해져 있는 곳이라 매해 멀미에 많이 힘들긴 했지만 택시타고 창문을 열고 가면 외할머니 동네 근처에 도착할 때가 되면 나는 특유의 향기가 있었거든요. 그게 향이 나면 아 이제 도착이구나 했었거든요. 향으로 추억하는 외할머니댁을 오래오래 가고 싶습니다.
  • 이**** 2021-09-06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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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93년 추석 보성 득량역에서 비둘기호 타고 입석으로 서울오는데 그때 나이가 13살이랬죠. 아부지하고 둘이서 덜컹거리는 문앞에서 기약없는 시간을 보냈을때 대전역에서 먹었던 가락국수가 어찌나 맛이있던지ㅎ 여튼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10시간으로 기억됩니다
  • 최**** 2021-09-06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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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아~ 잊지못할 귀향길... 떡시루같은 기차에서 부모님은 서서가시고
    어린 자식인 저는 의자 등받이 사이 공간에 들어가서 쭈그리고 앉아 4~5시간을 갔던 찐한 기억이 납니다.
    기차에서 내리면 부모님도 저도 몸은 시루떡이 되었지만,
    그래도 친척분들을 볼 수 있다는 마음만은 즐거웠죠~~
  • 변**** 2021-09-06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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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소변,*변을 못참는 우리가족, 밀리는 차속에서 참는다고 고생했어요, 사실은 반쯤 지렸네요,, ㅋㅋㅋ 이제는 옛 추억을 떠올리며 웃고 있네요,,
  • 이**** 2021-09-07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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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추석하면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일이 있죠ㅋ
    오래된 봉고차에 다섯식구가 타고가다 어디가 고장난건지 톨게이트에서 딱 멈춰버려 아버지빼고 모두나와 뒤에서 차를 밀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ㅋ
    요즘같은 하이패스 차선이 없던 시절이라 큰 사고없이 어린시절 저는 마냥 웃기기만 했는데 울아버지 얼마나 식은땀을 흘리셨을지....이제 훌쩍 커버리다 못해 늙어가는 제가 하이패스로 손주 데리고 곧 봬러갈게요^^
  • 장**** 2021-09-07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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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가족끼리 화목할 시기에, 불행한 일을 겪으며 힘든 시기를 보내고있습니다. 어렸을때 무궁화호타고 계란이랑 귤먹으면서 시골가던 그 어린시절로 돌아가고싶네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행복한지 세삼 느낍니다.
  • 손**** 2021-09-07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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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저희는 자가용이 많지 않을때니까 고향 가는 오빠분들이 버스를 대여해서 모두 을지로4가에 새벽부터 모여서 머나먼 완도를 향해 갔드랬죠.어려서 상경하여 고향 언니 오빠들을 그때 다만나서 내려가니 좋았던 기억과 멀미때문에 시체가되어 가다가 고향어귀에 있던밭으로 달려가서 엎드려 흙냄새를 마음껏 맡았었죠. 맨발로 뛰어나와 반겨주시고 김치로 속달래주던 아빠. 올라올때는 비닐 봉투에 흙한줌 넣어주시며 그냄새를 맡으면 멀미를 하지 않을거 같아 속상해 하시며 보내시던 부모님이 이젠 돌아가시고 안계시니 마음이 아픕니다.그때가 참그립습니다.
  • 오**** 2021-09-08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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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지금은 아이셋을 둔 엄마인데요~^^
    저때는 고향이 전라도 산골이었는데 한번 갈때마다 차가 막히면 15~17시간씩 차안에서 보냈답니다~엉덩이가 불이 날정도로 비포장도로를 지나야 집이 보였죠~^^ 엄마아뻐 선물 바리바리 싸들고 가다보면 울타리 너머로 날 기다리는 엄마아빠 모습~정말 그립습니다~ㅠ
    지금은 고향이 사라진지 오래 되었답니다~~
  • 유**** 2021-09-08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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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초등학교 시절 열 몇 시간 걸려서 시골에 도착하는 바람에 번갈아 가면서 차에서 내려 휴게소까지 걸어가서 음식 사먹고, 화장실 가고 했던 기억이 있네요. 일기장만 버리지 않았으면 정확히 몇 시간 걸렸는지 알 수 있을 텐데 아쉬워요. 부모님한테 물어보니 저 어렸을 때는 스무시간 넘게 걸린 적도 있다고 하시네요...
    초등학교 때도 친구가 안 믿어서 엄청 억울해했던 기억이 있는데ㅠ 차 안 막히면 4시간 정도면 갔던 길인데, 명절엔 꽉 막힌 길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죠...차 안에 있던 시간이 그립진 않은데, 사실 그 과정에도 휴게소에서 주전부리를 하고 했던 기억은 또 재밌었어서 생각나긴 하네요.
  • 김**** 2021-09-08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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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항상 출발전 화장실을 가는 부모님과 저와달리 가고싶지 않다고 그냥 차를 타던 동생 출발전 아침과 과일 식혜들을 먹고 출발한 우리는 차가 출발한지 30분이 지났을까 갑자기 화장실을 찾던 동생 아침일찍 출발했어도 차는 매우 많이 밀렸고… 그때는 내비게이션이 없고 지도로만 보던 시절 휴게소가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르고 나오지도 않아서 몸을 베베꼬면서… 화장실을 얼마나 찾았는지….. 30분을 더 가서 겨우 겨우 휴게소에서 화장실을 갔네요… 이제는 커서 꼭 출발하기전에 화장실을 간답니다. ^^
  • 김**** 2021-09-08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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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추석 명절이 다가오면 장모님이 생각납니다.
    장모님이 손수키우신 콩나물과 커다란 가마솥에 장작불을 피워가며 만드신 메밀묵을 머리에 이고 횡성시장까지 가서 팔곤하셨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때 모습만 눈에 선할뿐 뵐 수가 없네요.2020년12월에 돌아가셨건든요.
    이번 추석에는 산소에라도 가서 술한잔 올리려 합니다. 장모님 보고싶네요.
  • 이**** 2021-09-08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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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지금으로부터 25년전 일이예요~결혼하고 첫 시댁을 가는데 차도 너무 밀리고 힘들었어요~너무 힘들게 도착했는데
    장남의 아들 장손 집안인데다가 한옥스타일의 시댁 부엌은 허리 숙여 일해야하고~
    조상4대 차례지내는 음식을해야되서 도착하자마자 아침먹고 전굽기 10시에 시작~
    다 굽고 일어나니까 밤9시~정말 죽는줄 알았어요~
    게다가 설겆이도 쪼그리고 앉아서 1시간넘게하고요~
    그땐 정말 이게 시집살이구나 했죠~
    그렇지만 지금은 아파트로 이사하셔서 제사도 많이 줄고 명절되도 그때처럼은 음식 많이 안해요~
    정말 우리부모님세대 어른들은 대단하신분들 같아요..
    저에겐 조금은 악몽같지만 그래도 조상을 모신다는게 뿌듯하다는걸 20년 넘어 깨달았어요..
    부모님께서 항상 저희 곁에 계시길 바래봅니다.
  • 호**** 2021-09-08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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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고속도로에 차가 막혀도 고향 가는 길은 즐겁기만 했습니다.
    코로나19로 많이 달라진 귀성 풍경
    남도장터 홍보 우편물을 받고
    정성스런 마음을 담아
    남도장터에서 선물을 구매했습니다.
    일반 오픈마켓보다 저렴하고
    우리 지역에서 생산되는
    믿을 수 있는 농축수산물을
    구매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임**** 2021-09-09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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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결혼하고 첫 추석이었어요~ 시댁에서 추석당일 제사 지내고 친정으로 내려오는데 길이 어마어마하게 막히는거예요~ 네비가 이상한 국도로 데려가는데 화장실하나 없고 차들은 줄지어 서있고.. 하필 소변 참기 힘들어하는 나인데.. 길막혀서 짜증나있는데 챙피하기도하고 소변땜에 남편하고 싸우고 참다 참다가 적당한 길에 세우고 산속으로 들어가서 해결하고 다시 갔네요.. 아... 옛~날이여~~ 이젠 그럴필요 없어서 너~~~~~~~~~~무 좋아요~ ㅎㅎㅎㅎ
  • 안**** 2021-09-09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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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잠든 아이들 애아빠랑 하나씩 들쳐 안고 새벽 일찍 귀성길 나서던게 생각나네요~ 그때는 무조건 일찍 일어나 컴컴한 하늘 바라보며 이동해야 빨리 도착하니까, 피곤함 생각도 안하고 움직였어요~ 줄지어 막히는 그 시간도 그저 여행길이어서 막혀도 설레이던 귀성길이었어요 ^^ 미리 준비해간 간식 먹으면서 이동하니 설레이던 귀성길이 더욱 설레였었어요.
    막히는 구간에 화장실 가고 싶다던 아이 때문에 어찌나 난감하던지요.
    요즘 코로나로 인해 가족간의 모임도 주저하는때라 좀 아쉽긴 해요. 빨리 코로나 시국이 끝나서 예전처럼 사람들간의 만남이 자유롭고 즐거워졌으면 좋겠어요 ^^
  • 윥**** 2021-09-09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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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핵가족, 고령화시대, 코로나19, 불과 20년여 전만해도 라떼는 말예요. 그야말로 명절의 감성이 충만한 시대였어요. 정말 북적북적 온 친척 다 모여서 송편 빚고, 전 부치고, 서로의 안부 물어가면서 엄마는 힘들었겠지만, 나와 오빠는 참으로 설레는 그런 대 잔치 분위였드랬죠.. 그때는 교통제증에, 또 친척끼리 말 잘못나와 싸우기라도 하면 분위기가 싸해서, 금새 다들 뿔뿔히 흩어지는 때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다 추억이었네요. 지금은 경험할 수 없는 잔치같은 명절의 분위기는 아니지만, 여전히 명절 선물세트만이 그대로의 감성을 지니고 있어, 이렇게 명절 때가 다가오면, 선물세트 고르는 재미에 푹 빠져듭니다.
    아무쪼록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이지만, 나름의 방법으로 즐거운 명절 보내시길 바라며, ,남도장터도 더욱 활성화되서 많은 농축산 과일 등 지역 산물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화이팅!
  • 이**** 2021-09-10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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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충청도 먼 증평에서 전남 순천으로 시집온 저희 엄마는 늘 명절에 마음편하게 외가집에 가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외가집에 갈때마다 환해지던 엄마의 얼굴이 그립네요. 추석 명절 모두 모여앉아 빚던 송편도 그립고 함께 달을 보며 빌던 소원도 그리워요. 무엇보다도 엄마가 그립네요. 어서 코로나가 끝나고 저도 환한 얼굴로 엄마를 보러가고싶네요
  • 이**** 2021-09-10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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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40년전쯤이네요. 그때는 명절에 한번 이동하려면 표가 없어서 기차안 화장실까지 가득차서 갔었네요. 화장실 가야된다고 동동거리면 화장실 안에서 우르르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는 진풍경도 있었죠. 손에는 보따리들고 아이들은 칭얼대도 그래도 고향간다고 다들 즐거워서 얼굴에는 미소가득이었는데. ..
    지금은 그렇게 가라면 못 갈걸요. 그시절만이 가질 수 있는 느낌을 이제는 추억으로만 꺼내봐야 하네요.
  • 전**** 2021-09-10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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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지난 설 연휴에 이어 이번 추석도 코로나로 인해 조심스럽네요 그렇지만 남도몰에서 소중한 분들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신선한 과일과 육질 좋은 고기까지 선택지가 다양하게 있어서 편리하게 선물 준비할 수 있게 해주셔서 넘넘 고맙습니다. 남도몰 언제나 번창하세요!!!
  • 안**** 2021-09-13 0점
    수정 삭제 댓글
    스팸글 코로나로 인하여 찾아 뵙지 못하는 친척들과 지인들에게 마음의 정성을 보낼 곳을 잘 찾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들의 사랑이 가득 담긴 곳, 우리 농어민들의 정성과 땀의 결실, 농도 전남이 자랑하는 남도장터 전남몰을 이용하여 올 추석 선물을 이곳에서 30여분께 보냈습니다. 예전처럼 찾아 뵙고 음식을 나누지는 못하더라도 마음만은 가깝게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서울역에서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그리고 그 옛날 용산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내고향 전남으로 가는 기차표나 버스표를 못구하면 45인승 관광버스를 타고 고향 가던 추억이 생각납니다. 아무리 차가 밀리고 길이 멀더라도 고향으로 가는 입석 기차나 만원 버스 안은 이미 추석이고 설날이었습니다. 모두들 우리 고향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객지에선 아껴쓰던 구수한 사투리를 그 안에선 마음껏 구사하였기 때문이며 정감가는 음식을 서로 나누었기에 그랬습니다. 호남향우님들과 함께 하시는 대한국민 여러분 올해에도 만복이 함께하는 추석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번 추석에는 우리 모두 경기반등의 기운을 모아 반드시 경제활력의 불꽃을 재점화 하여 다시 뛰는 대한민국을 만듭시다.
  • t**** 2021-09-16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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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그때..... 길이 너무 막혀서 5km 3시간 동안 운전했어요.... ㅜ ㅜ
    이번에는 집에 있어야 해요.
  • k**** 2021-09-16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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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그때는... ^^ 운전 포기하고 자전거로 70km 탔어요. 부모님을 뵈러 갔어요...
    재미있었어요!!!!
  • 이**** 2021-09-17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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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20년전 처음으로 서울에 입사하여 고향에 가려 고속터미널로 간다고 갔는데. 이미 일반고속만 자리가 있었어요. 그래도 자리가 있네~ 하며 휴게소에서 간식먹자 하며 따로 간식준비도 안했는데......차가 밀려 휴게소를 거의 갈수없다는걸 내려가면서야 알았어요. 급한 볼일도 갓길에서 봐야하고ㅋ 점심12시에 탄 버스가 밤12시가 되어서도 도착하지못했던 귀향길^^ 그땐 정말 배고파서 괴로웠는데 지금은 하나의 추억으로 가슴저켠에 남아있네요. 언제들어도 푸근하고 따뜻한 고향~~~얼른 코로나가 물러가고 맘편히 갈수있는 날이 오길 고대합니다.우리 국민 모두가 행복하고 편한하게 웃을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어요. 모두 힘내시고 행복한 명절 보내세요.
  • 배**** 2021-09-17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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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명절때마다 가족들 보러가는건 고생길이죠 ㅠㅠ 그래도 오랜만에 보고싶었던 가족들 보면 고생길이어도 참고 갑니다!
  • 곽**** 2021-09-22 0점
    수정 삭제 댓글
    스팸글 사실 귀향길 이야기라 해봐야 대전에서 천안 북면을 오가는, 암만 밀려도 고속도로 2시간 만에 가는 초단거리라 다른 분처럼 에피소드라고 이름붙일 만큼 역동적인 일을 겪은 기억은 없어요.

    그래도 저희 집만이 공유하는 소소한 그 시절 귀향 풍경의 추억을 풀어 보면 이렇습니다. 다른 집 아주버님들은 경기 이천, 서울, 포항, 성남 등등에서 먼길 오시는데, 엎어지면 코닿을(?) 대전에 사는 저희는 집도 제일 가까울뿐더러 남편도 형제 중에 막내이기도 해서 어느 가족보다 먼저 도착했죠. 가장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면서 다른 식구들 떠나시는 것 배웅한 다음 가장 나중에 귀성길에 올랐어요. '귀향은 1등 귀성은 꼴찌'는 저희 몫이었답니다.

    지금은 양가 부모님 모두 하늘나라에 가계셔서 집안이 예전만큼 가깝게 모이진 못하지만 단체대화방을 통한 안부 톡은 어김없이 이어집니다. 얼굴 맞대진 못해도 가족이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이리라 믿습니다.

    시부모님 돌아가시고, 큰아주버님 댁인 서울에 모이게 된 뒤로는 자가용 대신 주로 대전발 영등포 가는 무궁화호 열차로 다섯 식구(남편, 저, 세 아들)가 오고갔던 추억도 문득 생각납니다.
  • 전**** 2021-09-23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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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짧은 추석 연휴, 서울로 역귀경을 마치고 밤 12시가 넘어 부산으로 돌아가는 길...
    대구정도 지날즈음 눈꺼플은 천근만근, 졸음운전에 내 차는 갈 '지' 자...
    고속도로에서 온가족이 비명횡사(?)하겠다 싶어 갓길에 차를 세우고...
    이미 조수석에서 선잠을 청하고 있는 아내와 뒷자리에서 집에서 보다 더 깊은 잠이 든 초딩 딸아이에 대한 야속함을 뒤로하고...
    '잠깐 눈만 붙이고 일어나 새벽에 집에 도착해 출근해야지' 라는 생각에... 운전석 의자를 뉘워 자세를 잡았는데...
    '헐~' 일어나 보니 8시... ㅡ,.ㅡ 거짓말 조금 더해서 해는 중천... ㅠ.ㅠ
    아... 그 때의 좌절감이란... '뭐라고 회사에 연락을 하지? 고속도로에서 숙면을 취했다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래도 아무런 사고없이 잘 돌아왔음에 감사하며, 가을 햇살 온몸으로 맞으며 집으로 향했답니다.^^~
    모두 다 명절 피로 확 날려버리시고~ 화이팅하세요~~
  • 이**** 2021-09-24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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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저 어릴쩍 명절 풍경은 명절 전날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짐을 바리바리 선물들고 끝도 없는 줄을 서서 겨우 입석표 몇장 구해서 버스가 터져라 사람들 짐짝처럼 싫고 앉을 자리가 부족하면 기사님 옆 엔진 뚜껑 위에까지 앉아서 시골 정류장마다 들러서 사람이 싫고 내리고를 반복 ㅎㅎ 자다 깨다를 반복해야 겨우 시골 할머니댁에 도착했더랬다 ㅎㅎ
    도착해서 시골 풍경은 큰어머니가 절구에 찰밥을 가득해서 넣고 찧고 뒤집기를 반복해서 찰떡을 만드시고 다라이 가득 떡 반죽해서 송편을 만들고 ㅎㅎ 엄마는 몇광주리나 되는 전을 부치고 우리 남매들은 그 옆에서 엄마가 주는 떡이나 전 하나 얻어먹으려 그 옆에서 옹기종기 앉아있고 ㅎㅎ 그때가 힘들긴 했어도 그 정취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네요 ^^ 그때의 따듯한 정이 그립기도 하네요~
  • 최**** 2021-09-25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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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저는 시골에서 어린시절을 모두 보냈기에 귀향길에대한 경험은 없습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딘 13년전 이야기를 꺼내려고 합니다
    이른추석에 미리 대처할 시간도 없이 금요일 오전 근무를 마치고 서울에서 장성까지 귀향길을 가는데 처음느껴본 귀향길이 정말 힘들어도 힘들지않다는 경험을 했답니다. 명절전날 오전이라 차량은 많지않았지만 제마음속엔 브레이크가없더라고요, 한번도 쉬지않고 장성까지 한방에 도착했네요 그땐 행복하고 설레었지만 올해는 전레에없는 사건이라서 추억을 회상하며, 고향에서 풍기는 시골스런 향기만저도 그리웠던 시간 이었습니다.
  • 조**** 2021-09-28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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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어릴적 저는 평소 입고 다니지 못하는 한복을 입을수 있단 생각에 추석이 매번 기다려지곤 했습니다. 오로지 명절에만 입을수 있는 한복이 드레스 느낌도 나고 바람으로 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생각에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할머니댁에 내려가선 한복을 한번 입으면 잘 때까지 벗지않고 계속 입곤 했었습니다. 지금은 한복보단 평상복이 편하게 느껴지는 나이가 됐지만, 유년기에만 한복을 사서 입혀주던 때가 너무 그리워 아직까지도 명절 에피소드를 꼽으라고 하면 한복을 입은 제 모습이 그렇게 기억에 남습니다.
  • 백**** 2021-09-28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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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유년기 시절이라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매년 추석이 있는 당일이나 연휴에 무조건 저희 4가족은 아버지가 운전하시는 차를 타고 할머니댁에 방문을 했었습니다. 제가 6-7살쯤 이었습니다 추석 당일에 내려가기로 하였지만 갑자기 아버지가 일이 잡혀 같이 못 내려가게 되는 상황이 생겼었습니다. 그 당시 어머니께선 운전면허가 없으셨고 이용할 수 있던 교통수단이 버스밖에 없었던 저희는 무거운 짐과 함께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원래의 명절 풍경은 사람도 많고 음식도 풍성한 그런 모습이 그려지기 마련인데 어렸을 때이지만 그 때의 추석귀향길은 뭔가 더 허전하고 외로운 느낌을 많이 받았었습니다.
  • 박**** 2021-09-28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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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저희 시댁은 남편이 외동이라 벌초할때마다 애를 먹었어요. 남편은 혼자고 벌초해야할 조상님들의 묘지는 여기저기 떨어져 있고.....그런데 올해 다가오는 추석을 위해 벌초를 하러 증조시부모님 묘지에 갔는데 멧돼지가 봉분을 여기저기 파헤쳐 놓아 너무 속상해하는 남편과 시어머님의 표정을 잊을수가 없네요. 어머님은 괜히 조상님을 편안하게 못보시는것이 당신 잘못인냥 우시면서 고하는데 저도 죄송한 마음과 함께 슬픔을 가늘수가 없었지요. 서로 힘을 보아 흙을 퍼다 눌러 발로다독이고 3일뒤에 사람을 불러 다시 정비하고 왔네요. 올 추석 가족이 모이지는 못했지만 조상님의 산소를 깔끔하게 정리했다는 안도감으로 우리 식구들은 다른 해보다 차례를 더 정성껏 잘 모셨네요.
  • b**** 2021-09-29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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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그래도 명절이면 시골집에 부모님과 모여 술한잔도하고 좁은 시골집이지만 사람 냄새가 나고 정겨운 맛이 있었는데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니 자주 만날일도 없고
    옛날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습니다. 명절이면 차가 막혀 한번 가기도 쉽지 않았지만 그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리운 부모님~~
  • 백**** 2021-09-29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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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명절을 맞이하여 올라온 자식들과 함께 웃고 떠드는 시간, 함께 맛있는 것을 먹으며 덕담을 주고 받는 오붓한 자리. 서로에게 의지하며 함께 만드는 추석 음식들... 누군가에게는 평범하 ㄴ 추석의 모습이지만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어르신들께는 평범하지 않은 그리움으로 가득 찬 추석,,,
    온가족 모이던 추석이 그립습니다
  • 유**** 2021-09-29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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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변화가 생긴 팬데믹 시대에 의욕도 없고 하루하루 답답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네요.. 이번 추석은 연휴가 길어 기다려지기는 했으나 정말 명절 같지않은 명절을 보내고 온 것 같아요 ㅎㅎ,,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을 뵙고 하는 것은 좋지만 그에 비해 친척 지인분들을 만나는데 제한이 있어 풍요롭지 못한 추석을 보낸거 같아 이렇게라도 댓글이벤트를 하면서 배 라도 풍족해질수 있길 바라며 참여해봐요
  • 박**** 2021-09-29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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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30년 전에는(1991년에는)*

    KTX도 없고, 도로가 이렇게 좋지 않아서 명절에 내려가면 도로가 꽉꽉 막혀 있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동생과 함께 차를 네다섯시간씩 타다보면
    온몸이 오징어 굽듯이 뒤틀려서, 동생이랑 저랑 차의 뒷자리에서 서로 눕겠다고 다투다가 혼나곤 했었습니다.

    그러다 들리는 휴게소에서는 털보네 우동이 그렇게 꿀 맛이었는데
    지금은 휴게소에서 보이지 않더라구요.

    우여곡절 끝에 할머니 댁에 도착하면
    할머니가 쿰쿰한 냄새가 나지만, 지금은 먹고 싶어도 못먹는 장독대에서 꺼낸 묵은김치와
    그리도 싫어했던 콩밥과 뽀얗게 살이 통통한 닭을 삶아 주시곤 했었습니다.
    밥을 먹고 나면 어른들 이야기가 재미가 없어 마당에 나가면 누렁이가 있고
    내일 있을 벌초가 끝나면 할아버지랑 나가서 강가에서 물고기 잡을 생각에 신이 났었죠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는 시골이 없어졌습니다.
    지금은 조상님들을 다 납골당에 모시고,
    서울에서 가족들이 모여 그 동안 못나눈 이야기를, 정을 나눕니다.
    서울에서 모이니 차를 탈일도 없고, 고생도 안하지만
    가끔은 털보네 우동과 방바닥이 뜨끈했던 할머니 집이 생각이 납니다.
  • 김**** 2021-09-29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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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결혼하고 첫 추석명절! 남편 큰집 어른들께 인사드린다고 통영에 갔답니다. 결혼전엔 명절 대란,귀성길 대란을 뉴스로만 봤었다지요. 막상 제가 경험하니 정말 울었네요. 장시간 앉아있고 임신중이였던 터라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은데 차가 밀려 갈수가 없었어요. 몇시간을 참다 겨우 주유소 화장실에 갈수 있었답니다. 그때의 기억 때문에 휴게소를 2곳마다 들락거리네요 . 뱃속아이는 13세살이 되었답니다~명절 귀성길은 세월이 지나도 여전하지만 그래도 갈곳이 있어 좋습니당^-^
  • 김**** 2021-09-30 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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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글 라떼는 말이야 ~~

    자가용이 없던 정말 옛날옛적 시절에
    지금은 노랫말에 추억이 서려있는 `목포행 완행열차`
    양손가득 고향집에 들고갈 선물꾸러미가 있다는 뿌듯함만으로
    무거워도 힘들어 하지않고 마냥 부풀었던 그 시절

    그러나 요즘세대는 택배라는 배송수단이 있어서
    무거운짐은 먼저 보내고 몸만 가볍게 움직일수 있어서
    얼마나 세상이 좋아졌는지 ㅎㅎ

    이제는 나를 반기던 부모님도 안계시고
    그때 그시절의 추억소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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